생각해 보면 남들이 하는 건 거의 하지 않았다. 컴퓨터공학을 전공했지만, 개발자가 되고 싶지 않았다. 솔직히 별로 재미없어 보였고 어려워 보이기만 했다. 그래서 남들 다 하는 알고리즘을 공부하지도, 개발 동아리에 가입하지도 않았다. 무언가를 지키는 일을 하고 싶었다. 사람을 보호하고 싶었고 나라를 지키고 싶었고 정보 유출을 막고 싶었다. 하지만 무언가를 지키고자 하는 나의 욕망에 비해 역량이 부족했고 오히려 내가 보호받아야 하는 경우가 다수였다. 학교에선 컴퓨터 지식을 가르쳤지만, 학교를 벗어나면 내가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기 바빴다. 그래 이거다! 하면 다른 하고 싶은 일이 생겼고 그래 여기로 정착하자! 하면 또 다른 일을 하고싶었다. 그렇게 4년이 흘렀다. 프론트엔드를 공부하면서 역시 개발은 나의 길이 아니구나 생각하기도 했다. 그렇게 길을 잃었다.
학교에서 시키는 것만 하면 컴퓨터 천재가 되는 줄 알았다. 가만히 앉아서 알려주는 내용만 외우면 되는 줄 알았다. 학교만 문제없이 졸업하면 사회에 나가서도 잘 생활할 수 있는 줄 알았다. 하지만 학교는 사회가 나에게 바라는 부분을 채워주지 못했다. 회사가 바라는 인재는 무난하게 학교 생활했던 내가 아닌, 다채로운 경험을 해본 사람들이었다. 학교에 약간의 배신감을 느꼈다.
늦었지만 졸업을 위해 반강제적으로 웹 백엔드 개발에 참여했다. 막막했다. 심지어 팀원 모두 웹 개발이 처음이라 더 막막했고 힘이 들었다. 아는 것 없이 온갖 블로그들의 힘을 빌려 어영부영 진행했다.
놀라운 건, 언제부턴가 코딩이 재밌어졌다. 밤에 시작해 고개를 들면 해가 떠 있었고, 개발하는데 팀원이 집에 가자고 하면 너무 싫었다. 개발에 스며들었다. 그게 언제였는진 아직도 모르겠다. 지금껏 해보지도 않고 개발이 싫었던 것이다. 무작정 판단해 버린 과거의 내가 너무 미웠다. 이렇게 방황 아닌 방황을 할 동안 옆에 있는 친구들은 하나의 길을 묵묵히 걸어갔다. 그들이 너무 부러웠다. 어떻게 처음부터 좋아하는 일을 찾았지? 나는 길을 잘못 들었을 때 몰려올 후회감이 두려워 첫발을 내딛기가 정말 어려웠었는데.
긴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은 결론은, 나는 정말 느리다. 원래도 느린 사람인데 더 느려졌다. 밥을 먹는 속도도, 사람과 친해지는 속도도, 키가 자라는 속도도 느렸는데, 중간에 길을 잃으니 더 느려졌다. 경험이 부족하니 배로 느렸고, 개발자로서 내세울 수 있는 건 고작 허울뿐인 전공자라는 사실과 열정뿐이었다. 그래서 우테코에 들어와 일주일은 정말 조급했다. 나도 모르게 남들과 비교하며 위축되었다. 어쩌면 우테코라는 환경이 어쩔 수 없이 날 그렇게 만들었을 수도 있겠다. 이곳의 크루들은 나와 같은 길을 향했고 그들과 나의 속도 차이가 명확히 보였으니까. 또, 이곳에 오니 전공자와 비전공자를 나누었다. 비전공자가 전공자를 보며 조바심을 느끼고 전공자가 비전공자를 보며 억울해한댄다. 나는 전공자지만 평균적인 전공자만큼의 실력을 갖추지 못했다. 그렇다고 비전공자도 아니다. 두 입장 모두에 해당하지 못했다. 그래서 그 누구보다 심하게 조급함을 느꼈나 보다.
이랬던 날 일으킨 건 코치분들이었다. 절대 조급해하지 말라고, 시작점이 다른 것뿐이고 성장할 수 있는 범위가 더 넓어 오히려 좋다고 계속 위로와 응원을 보내주었다. 그 결과 내가 받았던 조급함과 스트레스가 점차 누그러졌고 다시 일어날 수 있는 발판이 되었다. 나를 끌어주는 사람들의 중요성을 깊이 느낀 경험이었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사실은, 나는 느리고 시간은 빠르다. 내가 아무리 빠르게 달려도 시간은 나보다 월등히 빠르다. 그러니 조급함 없이 좋아하는 일들, 하고 싶은 일들을 묵묵히 즐기자. 과정이 힘들 뿐 느리게 얻은 결과는 그 무엇보다 가치 있다고 생각한다. 계속 나아가다 보면 시간과 나의 속도 격차도 줄일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