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버는 나랑 생각이 달라도 내가 반박 한 번 하면 바로 쫄잖아."
모 크루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다. 이 말은 나에게 적당한 충격을 주었다.
같지 않은 생각은 뱉지 않고 스스로 묵살해 버리는 것이 습관이었다. 특히 사적인 자리에서는 더더욱. 내 생각의 옳음을 주장하기보다 상대와의 부드러운 분위기를 형성하기가 나에게는 더 중요했다. 나에게 토론은 불필요한 에너지 낭비였다. 항상 지는 방향을 택했고, 다른 말로는 회피했다. 하지만 사적인 자리에서의 습관은 공적인 자리까지 이어졌다.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을 설득해 본 경험이 적으니 어쩌면 당연하다.
여덟 명과의 페어 프로그래밍을 통해, 한 명을 설득하는 것은 자신 있었다. 나의 주장에는 근거가 있고, 근거들을 풀어 설명할 논리가 있다. 하지만 다수와 나. 다대일의 상황에서 나는 위축되었고 도망가고 싶어 했다. 근거와 논리만으로 설득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내가 회피했던 사안은 항상 돌고 돌아 다른 크루의 입을 통해 전해졌다. 언젠가 발견되고 개선될 부분이었다. 다름이 무서워 무시했던 나의 찝찝함은 낭비된 리소스로 돌아왔다. 눈 딱 감고 이야기할걸. 먼저 이야기해서 시간 낭비하지 말걸. 그때부터 나는 내 주장을 아끼지 않기로 했다. 관련하여 유강스 목표를 설정했고, 설레는 마음으로 총대마켓 첫 회의에 참여했다.
첫 회의에 대한 설렘은 실망으로 돌아왔다. 나의 팀은 나와 성향이 달랐다. 나와 달리 그들은 집단 내에서 리스너보다 스피커에 가까운 사람들이었고, 하고 싶은 말을 즉시 꺼내는 것이 익숙해 보였다. 그들이 회의 중 익숙하게 생각하는 포지션 또한 있었을 테다. 부담감 또한 그들을 더욱 그들답게 만들었을 것이다.
처음엔 그런 팀원들이 미웠다. 회의 중 용기 내 말문을 열어도 누군가에 의해 금방 닫혔기 때문에, 그 상황들은 나를 작게 만들었고 나의 말수는 더 줄어들었다. 또는 전혀 반대로, 나의 말을 전하기 위해 팀원들의 말을 무의식적으로 자르기도 했다. 그런 내가 너무 싫었다.
불편함을 느꼈다면? 맞서 싸우면 된다. 간단하다. 그러나 난 그러지 못했다. '내 말 좀 들어줘' 찡찡대고 외치지 못했다. 팀 회고를 통해 감정 없이 정제된 형태로 팀에게 바라는 점을 전했지만, 큰 효과는 없었다. 간접적으로 개선하고자 노력했으나 파급력은 없었다. 역시 감정을 직접 전해야 했을까?
시간이 흘러, 팀 내 작은 파도가 일었다. 나와 비슷한 생각에서 야기된 파도였다. 그 작은 파도는 바람이 불어 큰 파도가 되었고, 그 틈을 타 혼자 외로이 타던 파도까지 쏟아냈다. 팀원들에 대한 미움, 적응하기 어려운 회의 분위기, 지친 채 벗어나 숨고 싶던 마음까지 모조리 털어냈다. 그들은 나의 모든 말을 따뜻하게 받아들였고 오히려 공감했다. 아직도 화성 회의실에서의 그 시간은 나를 울컥하게 한다.
누군가의 상처와 솔직함은 강한 무기가 되었다. 우리는 노력했다. 그라운드 룰을 개선했고 솔직한 분위기를 형성했다. 회의 분위기를 편안하게 만들었고 모두에게 집중했다. 어차피 시간이 흘렀다면 자연스레 개선될 문제였을까? 꼭 누군가 상처를 입고, 누군가의 마음을 드러내야만 개선이 가능한 문제였을까? 맞다. 불편한 지점을 정확히 콕 집어낸 덕분에 좋은 방향으로 해결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쫄지 않고 이야기하자'고 되뇌지 않는다. 더 나은 서비스를 고민하다 보면 무의식중 강하게 주장하는 나를 발견한다. 물론 다수의 앞은 여전히 두렵다. 나의 의견에 여러 반박이 들어오는 상황에서는 나의 근거가 충분히 합당함에도 긴장한다. 하지만 당연하다. 누군가를 설득한 경험이 적다. 애초에 내 의견을 지구 끝까지 피력하기 시작한 시점이 우아한테크코스 레벨2쯤부터이니. 고작 한 계절이다. 98 계절 중 1 계절인데, 나의 몸이 나의 행동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더 어색하다. 여전히 쫄보이긴 하지만 그래도 꽤 용감해졌음에 만족한다.
팀에 나의 바람은 모두 요구했다. 잘 듣고 경청해줘. 집중해줘. 잘 참여해줘. 그래서, 나는 잘하고 있나? 나도 모르게 팀원들에게 상처가 된 적 없을까? 팀원들에게 불편함을 주고 있진 않은가? 요구한 만큼 스스로를 돌아봐야 한다. 요구한 만큼 책임감을 가져야 한다. 항상 잊지 않기로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