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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모델이 작성한 에세이 원문

현실의 어지러운 삶에 맞서 부딪쳐 보려고 하는 것도 인간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겠으나 나에게는 참으로 감사한 일이다. 하찮은 것은 인정이나 칭송 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 사실은 너무 기쁘지만 죄송스러운 일이다. 한번은 서점을 가서 책을 구경하다가 이상한 모양의 푸른색 표지에 놀란 일이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며 표지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 젊은 시절 나의 일기장과 너무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내일도 그 녀석을 만난다면 좋은 기분으로 자야지 하고 내심 기대했었는데, 오늘의 실패가 거울에 비치고 매번 똑같은 표정을 짓고 있는 모습에 나는 한없이 작아졌다.

누구나 다 늙어 가는 게 아니겠느냐고 생각했던 때였다. 또한 생각없이 사랑이나 외치던 그 눈빛이 내 젊은 날의 시간을 되짚어 보는 듯하여 부끄럽기만 했다. 그러나 그 눈빛도 이제는 많이 늙어 검은 머리를 감추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상처를 받아도 피와 눈물로 얼룩진 가슴은 못 느꼈으나 허물어지고 보니 세월은 삼천을 지나온 것 같다.세월은 예나 지금이나 흔적을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누군가의 인생을 괴롭게 하고 누군가는 행복하게 만들 뿐이지 않을까. 상처도 아픔이지만, 인생을 다시금 돌아보는 흔적이라서인지 가슴에 박힌 지워지지 않는 앙금이 되어 외로이 내다 주고 있는 것 같다. 나이에 상관없이 내가 기억할 수 있는 건 극심한 경쟁과 압박 뿐만 아니라 어릴 때 가졌던 소원들이다. 늘 하늘의 선물을 동생들에게 전해주며, 기를 살려 달라고 기도했던 하늘이니까. 사실 무엇보다 간절한 소원들이 있었다. 아버지의 장례가 끝날 때까지 친척 동생들을 부를 힘조차 남지 않았다. 그리고 큰아버지가 오셨다. 큰아버지는 예스러운 그 넓은 공간에서 말문이 트이시며 포근하게 계셨다. 큰아버지는 그 품에서 아버지의 사진을 꺼냈다.

논둑 길의 흙에 젖은 발을 적시며 아버지는 괭이질을 몇 번이고 반복하셨을까. 아버지의 발은 거칠었지만 순수한 흙에서 나온 귀한 원액에 그 흙에 대한 감사와 어머니의 사랑을 느낀다고 하셨다. 그것은 초면의 너그러움에서 시작되었으리라. 나는 어린 시절 아버지를 따라 자연을 걸어서 전 생애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다.

이루 다룰 수 없는 꿈, 어린 시절, 그는 나를 슬프게 한다고 믿었다. 나는 어디로 훌쩍 떠나갈지 생각조차 하지를 못했다.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은 온통 백지 뿐이었으니까. 그 때는 친구들의 아버지가 부러웠다. 집이 곧 그의 아버지가 될 터였고, 거기에 나는 금팔찌 하나도 끼지 못했다.궁핍할 때는 맛보기만 해도 배부르셨는데 지금은 흔치 않은, 깊은 산 자락에서 단 한 번의 해변도 가지 못하고 쓸쓸히 계셨던 아버지를 그려본다.

아버지가 일하시는 밭에 들어섰을 때는 긴 바지를 입고 계셨다. 평생 가슴에 묻고 살아온 줄 알았던 그분의 모습은 앙상하게 육신만장에 어겨져 간 모습조차 후회만큼 슬프게 한다. “내 몸뚱이가 이렇게 많이 고장이냐” 엉엉 소리를 내면서 키득이는 아버지를 안아드리고 긴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당신의 존재는 가슴에 변함이 없구나. 그곳을 찾아가면 아버지의 얼굴은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데, 그 때마다 아버지가 얼마나 쓸쓸해 하고 있는지를.

아버지에 대한 회상은 길게, 몇 초 만에 내 마음 깊은 곳의 이야기가 풀려나며, 마음속에 선명한 기억으로 아로새겨진 것처럼 내 감정도 완고해졌다.

아버지의 기억을 업고 둔치 언덕에 이르니 은행나무가 노랗기 짝이 없었다. 해마다 드문드문 나타나는 그 한 그루 때문에 마음만 바쁘고 모두가 바쁘게만 보였다. 꽃 피어난 은행잎이 노란 옷을 입고 그렇게 보였다. 거기에서 나는 사랑과 이별, 만남과 이별을 노래하는 그런 노래들을 가슴 저리고 듣기 좋은 섞어 주고 있었다.

실연당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던 청산 속의 미운 사랑은 덧없이 내어 왔었다. 실연당한 사랑의 아픔을 노래하던 그 노래가 몇 년 만에 다시 나에게 돌아왔다. 짧은 사유의 표현이라고 짐작하면 안 되지만, 그것도 생각보다는 오랜 기간 나를 짓누르고 있던 외로움이었을까. 참으로 오래되어 보일 것이다.

그녀를 사랑했었고 지금도 그녀를 사랑한다. 아름다운 한 여인의 치맛자락에 얼굴을 스치는 바람결이 빚어내는 노랫소리가 외로움에 젖어 있던 마음을 떨어트렸다. 슬픔과 외로움, 그리고 사람에 대한 마지막 질문은 이것이었다. 바람이 되어 내 가슴을 적시던 여인의 소리를 떠올려 본다.

얼마 전 아름다운 황혼을 보았다. 사람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자리 잡기 마련이다. 두 줄 밖에 낼 수 없었던 긴 치마를 덩실거리며 가슴 태우던 모습이, 내게도 기쁨을 주던 여인의 고운 모습이 그대로 눈앞에 어른거렸다.

나를 닮은 한 여인이 있다. 잃어버린 낙원의 꿈을 되찾으실 수 있다는 그 여인이다. 하지만 내가 이제껏 보아 왔던 그 여인은 고향을 떠나온 후론 보기 안쓰럽게 다시 살아난 노쇠함을 보이는, 새색시가 아니라 그 기억을 붙들고 버리는 껍데기 속으로 다시 들어가 버린 나약한 모습이었다.

아내를 한없이 사랑하고 존경한다. 나는 자식들 앞에서 콩콩한 눈빛으로 아내를 바라보며 애달픈 사연을 털어놓는다. 아내에게 너무 많이 쏟으며 살아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더 이상 진행되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하였다.

“아내야, 나 이제 달라지는 건 없나. 다른 사람이 나를 바꾸는 것을 보면, 하루도 못살 것 같은데, 나는 변해가고 있는 것 같은데.”

“밝은 햇살보다 해맑음을 피부로 느낀다고 생각하니 제 착각인 거예요, 여보, 우리 나중에 서로 다정한 사이로 발전하기 위하여 서로가 서로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질 즈음에 나는 지금쯤 정말 좋은 인연을 만들 수 있는 멋진 사람이 된 거예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뜨거운 감정이야 여태까지 얼만큼 아팠으면 마음 약한 감이 없지 않아 있어요. 맞아요. 지금도 앞으로도.”

속박되고 미워만 가는 나의 마음을 달래주었던 것은 사랑의 형형색색의 아름다운 색깔, 그 수많은 꽃들과 함께 이 세상에 여운을 남기며 가없는 사랑을 속삭였던 여인이었다. 아내는 스승이고 아내와 나의 만남은 운명이다. 우유부단한 태도로 행할 수 없는 말을 힘겹게 뱉어내는 어리석음을 질책하던 밤, 차가운 얼음의 정감을 주고받으며 차가운 세월의 골짜기를 흘러 보낸다.

차가운 눈사태를 견뎌낸 계곡의 맨 얼굴을 담는 것조차 겨울 한 철, 모든 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따뜻한 햇살과 차가운 눈송이로 하얀 눈송이가 하얀 구름으로 피어오르고 그것이 거대한 눈꽃으로 밀려오면, 모든 이가 아, 진짜 같지가 않은 시간. 더 시린 겨울, 더 추워진 세상. 나의 인생에 다가오는 이 겨울. 모두 이 겨울 하늘을 보면서, 모두가 아, 무감각해졌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것은 마치 이 남은 시리운 과정을 거쳐 꺼져가는 불씨를 보듯이.

스스로를 지탱하는 등불로 그들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이라. 때로는 고독을, 그리고 정인의 고독을, 그리고 나를 슬프게 하는 그 모든 것들을. 나는 고독이라는 것에, 그리고 기쁨을, 그리고 안락을 통해 모두 함께함으로써 위안해 주고 싶다. 슬픔도 고통도 행복도 나의 삶이니 어찌 싫어하랴.

문득,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떳떳하지 못한 자신의 삶을 초라하게 그려낸 게 부끄럽고 부끄럽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글을 써내려간 나 자신이 엄하다. 부끄러움인지 후회인지, 후회의 탑도 있긴 하지만 부끄러움의 탑은 아직 버티고 있다. 후회의 탑은 어디에 있으며, 어디에 자신의 이름을 감추고 있는가. 그리고 죽음은 너무 심오하고 어렵지 않을까.

나는 삼십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줄곧 문학을 해왔다. 특히 동인지를 낸 해가 결실을 본 해였다. 이 동인지가 내 10년을 말해준다. 이 잡지에서 가장 기뻤던 때는 이 잡지가 서울에 처음 생긴 이래로 최초로 상경소설을 신인상으로 낸 해가 두 번이던 헤아려 어딘가 역전에서 유일하게 10년 이상을 버티고 있었는데 신인상이 주어진다고 후배들에게 지나치게 피해주고 욕먹는 자리에 있었는데도 왜 이리 힘들게 견디게 되었던지. 나는 고주망태가 되어갔고 한 동안 무기력함을 참을 수가 없었다. 꿈에 대한 집착은 그 즈음에 더 심해졌다.

부모님이든 주변이든 내가 하는 일이 주는 즐거움이 얼마나 큰지. 그래서 글쓰기는 내가 미리부터 깨달음이 있어서 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그렇게 보이지 않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했다. 작은 실수에도 야속하게 생각하고 화내는 모습에 가슴이 탈탈 끓었다. 하필이면 잠시 바닥을 보이고 있는 것이냐며 자책하기도 했다. 결국은 잡히고 말았어야 하는 것 아니었냐며 투덜거리지만 멍에가 무겁기만 하여 혼자 잡는다는 생각에 속앓이를 하는 것이었다. 지치지도 않고 버티는 것도 외로워 아버지를 찾아뵙지 못하고 그냥 혼자 뒤집어쓰는 서러움을 눈물과 혼까지 쓰며 참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갑자기 내가 혼자서 자신을 다스리려 참아 왔던 설움의 정체가 선명하게 드러나는 바로 그 파동이었다.

그 날도 계획과는 다르게 시계를 보며 샘을 내는 바람에 어느새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이 되었다. 7시 30분 경에는 너무 늦은 시간에 7시를 알려주는 문자가 왔다. 어머니께서 오늘은 일하러 가야하니라는 내용이었다. 그날 아침에 근무를 하고 오후 2시 출판사에 방문을 했다. 그리고 백일장에 그리 욕심을 부리고 있던 참이었다.

주위에 친구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겉으로 드러나는 것 만을 찍어내는 경향이 있어서 그런지 대회에 출품하기 시작한 지 일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그 실력은 초등부의 졸작과 다름이 없었다. 갈수록 명성이 커져가면서 나도 상을 타기 시작했을 때만 해도 자랑을 하고 다녔는데, 요새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별 수확이 없으면 꼴이 날 정도가 되었다. 사실 내가 그 정도의 콧대를 가지고 그다지 흥미와 호기심이 없던 내가 못다한 숙제를 얻은 기분이었다. 그러면서도 백일장이라니! 살짝 어깨가 들썩거려 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무언가 썩 내키지는 않아서 대회 하루 전날 저녁부터 먹은 것을 그대로 토하고 말았다. 대회날도 왠지 기분이 이상했다. 갑자기 기가 죽은 기분이었다.

주변에서 무수히 칭찬을 해 주는 분들이 계시기에 나도 부지런히 글을 더 쓰려고 하였고, 벼르면 원하는 작품을 써 낼 수 있을 거라고 주변에서 넌지시 말해왔지만 그건. 나는 원고지를 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지 못했고 소질도 없었다. 그러자 지금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원동력이 된 익명의 다수 휴대폰 메시지가 나를 부끄럽게 한다. 그녀에게 너무 미안할 따름이다. 그동안 잘해 왔는가 늘 마음에 걸리셨던 어머니. 나를 낳고 지금껏 살아오는 동안 얼마나 참담했을까. 어머니는 내게 모든 것을 딛고 일어서라고 말씀하셨다. 나는 끝내 눈물을 쏟아야 했다.

아무튼 세월이 참 빠르게 흘러넘쳐서 지금은 그림자처럼 나약한 사춘기 소년상으로 끝나버렸지만.

아마 빛 바랜 추억의 조각이었으리라. 모두가 나의 손을 기억하리라고, 아팠던 그 날 밤에는 난 슬피 울었을 거야. 그래, 얘기해보자. 홀로서기. 가끔씩 나는 마음속으로 이야기를 털어놓곤 한다. 여태까지의 나의 삶이 스쳐지나가는 곳이라면 어디든 놓아두는 것만으로도 나에게 의미 있는 일이라고. 그리고 나의 그 방에 그림자로 길을 떠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평생의 끈으로 길게 늘어뜨릴 것 같은 믿음으로 나는 항상 최선을 다하곤 한다. 눈을 들어 나의 걸음걸이는 그래, 나쁘진 않다. 다만 길을 벗어나기가 조금 힘이 들 뿐이다. 나는 나의 이런 모습이 차츰, 변해가고 있는 것을 느낀다.

간절한 마음으로 소원을 빌며 살아온 세월을 추억하며 그 때 그 서운한 마음들을 이제는 모두 거두어야 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그 소망의 빛으로 남은 생을 살아나가야 한다. 그리하여 세상은 희망으로 가득하게 되고 오래 전 희망으로 이 세상을 본다면 이 세상은 아직도 꿈으로만 남아있을 것이란 생각으로 꺼져가는 불 같은, 꺼진 그 빛을 되살릴 것이란 확신을 가져본다.

꿈은 현실이고 꿈은 노력이라는 말이 있지만, 노력만으로 무언가가 나온다는 것은 아니다. 욕심없는 마음으로 번민의 보배목이 되어 나의 품위를 다듬고, 나의 등불같은 삶을 풍요롭게 가꾸면 되는대로 살아가면 되는 것이겠지.